지난 12월 7일 정부·재계·금융기관이 청와대에서 합동간담회를 열고 구조조정 합의사항을 마련함으로써 그 동안 지지부진하던 재벌 구조조정의 설계도가 완성되었다. 합의사항이 앞으로 어떻게 이행될 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볼 때 국민정부는 그 어떤 정권도 해 낼 수 없었던 일을 이루어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IMF체제 아래서 국민정부가 이룩한 노·사·정 합의, 금융구조조정, 기업구조조정 등을 보면서 필자는 정부의 역할에 대한 자유주의자와 간섭주의자의 오랜 논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17세기 프랑스는 왕이 모든 사람들의 생활, 일, 재산에 대한 전권을 가지는 절대 군주국가였다. 루이 14세의 자문관이었던 콜베르는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산업을 장려하면 국가의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나름대로 많은 일을 했다고 자부한 콜베르가 제조업자들과 간담회를 가지면서 국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으면 좋겠는지를 물어 보았는데 그 자리에 참석했던 레쟝드라는 사업가가 "laissez-nous faire(내버려 두라)"라고 하였다. 이 말이 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자유방임(laissez faire)으로 불리어지면서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경제철학이 되었다.
그러나 몇몇 분야에서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장실패가 발생하였고 특히,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을 계기로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강화하자는 정부간섭주의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들은 시장실패로 인해 초래되는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의 문제를 정부가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 현재 우리 경제에 있어서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첫째, 정부는 '국민들의 동의'에 의해서만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정부가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고 해서 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서만 경제에 개입하되 지배자가 아니라 봉사자라는 마음으로 국민의 권리를 지켜주어야 한다.
둘째, 정부는 고도의 도덕성을 갖추고 경제논리에 입각하여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정책 입안자가 도덕성을 갖추지 못하면 정책 결정과정에 이익집단들의 로비가 작용하고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의해 자원이 배분되는 정부실패가 발생한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나라는 아시아 12개국 중에서 정부조직이 가장 관료적이며 정부실패의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최근 발표되고 있는 경제정책들을 보면 일관성이 없는데 일관성이 없는 정책은 경제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셋째, 정부는 가능한 한 빨리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구조조정은 정부가 주도할 수밖에 없지만 정부가 지속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형태에는 코치형, 감독형, 심판형이 있는데 개발도상기와 구조조정기에는 코치형 또는 감독형 정부가 필요하지만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자유보장·자기책임·경쟁 등의 원칙 아래 '게임의 법칙'을 제정하고 이를 잘 감시하는 심판형 정부가 필수적이다.
(濟州大 經濟學科 姜起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