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경제위기의 본질

姜起春

1.한국경제의 고도성장

한국경제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으로 경제개발을 시작한 이래 연평균 9% 이상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다. 광복이 된 지 5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와 비교해 보면 한국경제는 실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몇 가지 주요지표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면 국민총생산(GNP)은 1953년 14억 달러에 불과하던 것이 1997년에는 4,374억 달러로 312.4배의 양적 확대를 보이고 있으며, 1인당 국민총생산도 1953년 67달러에 불과하였으나 1997년에는 9,511달러로 142배가 증가하였다. 수출과 수입도 큰 증가를 보이고 있는데 1948년 각각 2,230만 달러와 2억8백만 달러에 불과하였던 것이 1997년에는 각각 1,361억 달러와 1,446억 달러를 나타내 6,106배와 695.3배의 증가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세계 속에서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국내총생산(GDP)은 1996년 현재 4,844억 달러로 세계 11위, 1인당 국내총생산은 10,636달러로 세계 3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무역교역량은 2,808억 달러로 1997년 기준으로 세계 11위를 차지하는 등 지난 50여년 동안 대단한 경제성과를 이룩하였다.

우리 나라가 이러한 고도성장과정에서 보인 특징으로는 세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압축성장(condensed growth)이다. 압축성장이란 경제성장 과정에서 수반되는 제반 적응과정을 생략함으로써 선진국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것을 수십 년만에 달성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압축성장으로 한국경제는 선진국의 개발경험을 토대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단기간에 걸친 업적위주의 성장을 하다보니 사회의 여러 분야에 걸쳐 부실 양상을 드러내었다. 둘째는 불균형성장(unbalanced growth)인데 산업면에서는 농업보다는 공업을 중시하며, 분업면에서는 수입대체산업보다는 수출산업을 중시하고, 기업면에서는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을 우선시 하는 성장전략을 채택해 왔다. 일본이나 대만보다 경제발전에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우리 정부가 개입한 결과 소득, 물가, 무역, 산업구조 등에서 한국은 일본이나 대만보다 불균형적인 발전을 보였다. 이러한 불균형성장 전략은 경제 각 부문간에 협력과 조화가 유지될 경우에는 효율적인 자원배분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각 부문간에 갈등이 존재할 경우에는 경제불안을 증폭시킨다. 셋째는 외연적 성장(extensive growth)이다. 외연적 성장이란 기존의 국내 부존자원과 기술에다 수입된 자원과 기술 등 하드웨어를 사용하여 이루어진 성장으로 외연적 성장의 원천은 원재료, 노동력, 기계설비 등 생산요소의 투입증대이다. 이 성장전략은 개발 초기에는 생산요소의 한계생산력 증대로 효과를 나타낼 수 있으나 개발과정을 거치면서 생산요소의 한계생산력체감으로 장기적인 성장에는 한계점을 드러내게 된다. 경제성장을 가져오게 하는 요인으로는 자본과 노동 등 생산요소의 투입증가와 기술진보로 인한 생산성 향상을 들 수 있는데 크루그만(P. Krugman)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개도국의 경제성장 동인은 생산성향상이 아니라 투입물의 증가에 의한 외연적 성장임을 주장하였다.

2.경제환경의 변화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1970-1980년대의 경제환경은 우리가 우리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우리의 기준으로 세계시장을 누비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오면서 우리를 둘러 싼 세계의 경제환경은 크게 바뀌었는데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자유무역주의와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PEC) 등 지역주의가 공존하면서 치열한 국가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세계의 무역자유화를 위한 우루과이라운드(UR)에 이어 환경오염 생산물에 대한 수출입을 규제하는 환경라운드(Green Round), 근로조건에 대한 국제적 표준화를 위한 노동라운드(Blue Round), 각국의 기술정책을 협상하는 기술라운드(Technology Round), 독점금지 등 경제정책의 국제표준화를 위한 경쟁라운드(Competition Round) 등 새로운 세계표준(Global standard)의 확립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 국내적으로도 199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 경제는 고성장경제에서 저성장경제로 전환하고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소위 '저성장-저수익'체제로 전환하였다. <표 1>에서 나타내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80년대 8.9%에서 90년대는 7.7%로 낮아지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90년대 들어 6%대로 하향추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자본이 축적됨에 따라 한계생산성이 낮아져 자본생산성이 90년대 들어 18% 수준으로 낮아졌다. 그리고 90년대부터 주가와 지가 등 자산가격이 안정되고 있고 제조업 매출액중 영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중도 70년대 8.3%에서 80년대 7.3%, 90년대 7.0%로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기업의 저수익 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금부족률도 증가하고 있다.

(표 1) 한국경제의 저성장-저수익체제

주요지표

70년대

80년대

90년대

잠재성장률(%)

8.0

8.9

7.7

소비자물가증가율(%)

15.2

8.4

6.4

자본생산성(%)

34.0

29.0

18.0

투자증가율(%)

14.9

8.5

10.5

주가상승률(%)

12.3

26.2

0.2

지가상승률(%)

30.6

14.5

3.7

영업이익/매출액(%)

8.3

7.3

7.0

자금부족률

15.8

10.9

13.5


3.IMF경제위기의 본질(진단)

경제주체들은 이러한 대내외적인 환경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행동패턴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변화에 빨리 적응하지 못했다. 현재 우리가 처하고 있는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한 견해로는 미국정부와 미국자본(hot money)이 모의하여 계획적으로 우리 경제를 위기로 몰아 넣었다고 보는 해외음모론, 관료들의 무책임과 재벌들의 과다한 차입경영 및 금융기관들의 부실대출 등 우리 경제주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원인으로 보는 부실행태론,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된 외환금융위기가 국제금융부문이 취약한 우리 나라에 파급된 것으로 보는 외환금융위기론, 관치금융과 재벌지배경제 및 정경유착 등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가 원인이라고 보는 구조적 위기론 등이 있다. 모두 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진단이고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지를 측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인데 필자는 우리 나라가 IMF구제금융을 받게 된 원인(原因)으로 원인(遠因), 간접적인 요인, 장기적인 요인과 근인(近因), 직접적인 요인, 단기적인 요인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장기요인

먼저 IMF구제금융의 장기적인 요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첫째는, 한국경제성장의 특징에서 살펴본 압축성장, 불균형성장 및 외연성장으로 인해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점을 들 수 있다. 즉, 기업은 정부가 모든 것을 해 준다는 정부의존형 경영방식 하에 정경유착과 대마불사 즉, '망하지 않으려면 기업규모를 키워야 한다'라고 생각하여 과다한 차입으로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경제력이 재벌에게로 집중되었다. 또한 지역간, 계층간, 도농간의 이중구조가 심화되어 갈등의 골이 깊어갔고 만성적인 국제수지 적자 및 고물가로 국민들의 고통은 높아갔다. 그리고 그 동안 표면화되지 못했던 노사관계가 민주화의 진전으로 노사문제로 표면화되면서 파업으로 인해 막대한 경제적 손실도 입게 되었다.

둘째는, 우리 경제의 고비용-저효율 경제체질을 들 수 있다. 우리 경제를 흔히들 '4高-3低'라고 하는데 4高는 고물가, 고임금, 고금리, 고지가이고 3低는 저능률, 저기술, 저부가가치이다. 즉, 우리 경제는 인건비, 금융비용, 지가, 물류비용 등 각종 비용이 높고 경제효율도 낮다는 것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표 2>와 같은데 1986년부터 1995년까지 우리 나라 제조업 명목임금이 연평균 15.3% 상승하여 연평균 노동생산성 증가율 9.2%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이 기간중 일본은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3.1%로 제조업 명목임금 상승률 2.7%를 상회하고 있어 우리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총매출액에 대한 인건비의 비율 즉, 인건비부담률은 1995년 현재 우리 나라 제조업의 경우 12.6%로 일본의 11.5%에 비해 높은 편이고 1985년의 10.4%보다 2.2% 포인트 증가하였다. 또한 1995년 현재 우리 나라와 일본의 제조업 부채비율은 각각 286.8%와 153.3%이고 차입금의 평균이자율은 각각 11.7%와 4.1%이다. 이에 따라 총매출액에 대한 금융비용의 비율 즉, 금융비용부담률은 각각 5.6%와 1.4%로 우리 나라가 일본의 4배에 달하고 있다. 한편, 우리 나라 기업의 물류비용은 매출액의 14.3%, 국내총생산(GDP)의 15.7%에 달하여 일본의 11.0%와 8.8%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표 2) 한국경제의 고비용-저효율 현황

주요지표

비교연도

한 국

일 본

제조업임금상승률(%)

노동생산성증가율(%)

인건비부담률(%)

'86-95년평균

"

95

15.3

9.2

12.6

2.7

3.1

11.51

차입금평균이자율(%)

부채비율(%)

금융비용부담률(%)

95

95

95

11.7

286.8

5.6

4.12

153.32

1.42

물류비용/매출액(%)

물류비용/GDP(%)

94

94

14.3

15.7

11.03

8.83

취업자1인당생산액(천달러)

제조업부가가치율(%)

94

94

74.9

29.1

205.4

37.3

1,2 일본은 1994년 기준

3 일본은 1993년 기준임.

셋째는, 총체적인 국가경쟁력의 약화를 들 수 있다. 국가경쟁력이란 국가의 경제주체들이 경제활동을 통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에서는 381개의 정량적 및 정성적 지표를 국내경제력, 국제화, 정부, 기업경영, 금융, 사회간접자본, 과학기술, 인적자본 등 8개의 분야로 나누어 전세계 40여개국의 국가경쟁력을 매년 측정하여 발표해 오고 있는데 우리 나라의 국가경쟁력은 평가대상 46개국 중에서 28위('93)->32위('94)->26위('95)->27위('96)->30위('97)->35위('98)를 나타내고 있다. 부문적으로 보면 우리 나라는 국내경제, 과학기술, 인적자원 등의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순위에 올랐지만 나머지 분야는 굉장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IMF체제 이후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급격하게 하락하였는데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싱가포르 2위, 홍콩 3위, 대만 16위, 일본 18위, 말레이시아 20위, 중국 24위, 필리핀 32위로 우리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국경제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은 국제화와 자율화의 부족이다. 국제화 부문의 경쟁력이 취약한 이유는 무역에 있어서 개방성이 떨어지고 외국인 근로자의 취업제한 및 외국인 투자제한 등 외국인 차별이 있기 때문이며, 자율화 부문의 경쟁력이 취약한 이유는 먼저 기업활동 및 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 및 규제가 많고 금융 부문에 대한 정부의 간섭으로 금융의 자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 정부 부문의 경쟁력 약화요인은 뇌물성 부정과 정책의 투명성 부족 때문이며 기업경영 부문에서는 노사문제, 품질대비 높은 가격, 경영층의 혁신 부족 등이 경쟁력 약화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는, 경제주체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거품(bubble)'을 들 수 있다. 거품이란 소득수준에 맞는 합리적인 소비수준을 넘는 과대한 소비행위를 말하는데 우리 나라는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부문에 과소비 풍조가 만연해 있다. 우리 나라 소비문화의 특징을 싹쓸이 구매, 탐욕적 소비, 타락소비, 모방소비, 과시성 소비로 나타내는데 한마디로 거품소비이다.

우리 나라의 거품소비 현황을 경제주체별로 살펴보면 먼저 가계부문의 경우 석유·가스·유연탄 등 주요 에너지의 97%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의 GDP대비 에너지 소비량은 1993년 현재 한국이 1000달러당 0.37톤, 일본이 0.09톤, 미국이 0.15톤으로 에너지가 과소비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1인당 GNP대비 해외여행 경비는 한국이 15.3%, 일본 5.8%, 미국 3.5%로 우리의 해외여행자들이 무분별하게 외화를 낭비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연간 승용차 평균주행거리는 1993년 현재 한국이 25,700km, 일본이 10,100km, 미국이 17,900km로 우리 나라의 주행거리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1.5-2.5배 정도 많다. 뿐만 아니라 승용차를 부와 품위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생각하여 3.3년에 한번 정도로 승용차를 교체하여 일본의 9.4년, 미국의 7.8년에 비해 굉장히 자주 교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GDP대비 양주수입비중은 1996년 현재 한국이 0.063%, 일본이 0.005%, 미국이 0.007%로 우리 나라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9-12배 정도 많은 양주를 수입하고 있다. 다음으로 기업부문은 총임직원 수에 비해 임원의 비중은 한국이 0.1-0.25, 일본이 0.03, 미국이 0.05로 임원이 너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총근로자에 대한 노조전임자수의 비율도 1993년 현재 한국이 183명당 1명, 일본이 600명당 1명, 미국이 1300명당 1명으로 우리 나라의 비율이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3.3배-7.1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정부부문의 거품도 심각한데 그 한 예로 우리 나라의 국회의원 숫자는 299명으로 인구 15만 명당 1명인데 이는 인구 24만 명 1명인 일본이나 43만 명 1명인 미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숫자이다.

(2)단기요인

IMF구제금융의 단기적인 요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첫째는,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불신풍조를 들 수 있다. 먼저 우리 정부에 대한 외국인들의 불신인데 정부가 원칙과 일관성(consistency)이 없이 시장원리에 따른 경제논리보다는 여론과 로비 등 정치논리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 결과 정부 실패(government failure)가 발생하고 경제주체들로 하여금 자신의 노력보다는 정부에 의존하려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공표하는 자료에 대해서도 외국인들은 강한 불신을 보이는데 예를 들면 외환위기가 진행되던 1997년 10월 31일 당시 정부가 발표한 우리의 공식외환보유고가 305억 달러였지만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가용외환보유고는 225억 달러로 그 차이가 80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진전되면서 그 차이는 더욱 커져서 외국인들은 정부발표를 도저히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다음으로 우리 기업의 기업경영투명성에 대한 외국인들의 불신인데 규모조차 파악하기 힘든 비자금과 정치자금, 분식결산으로 인해 믿을 수도 없고 국제적 회계기준에도 미흡한 재무제표, 상호지급보증으로 얽혀있으면서도 연결재무제표도 공개하지 않는 기업집단들, 부실한 신용평가 및 회계감사 등으로 인해 외국인들은 기업의 공시조차도 믿지 않게 되었다.

둘째는, 우리 정부와 금융기관 및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의 부족을 들 수 있다. 먼저 <표 3>에서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세계은행(World Bank) 기준으로 1990년 총외채가 317억 달러에서 1996년에는 1,047억 달러로 급증하였고 1997년 현재는 1,208억 달러이다. 이렇게 증대된 외채는 대외자산의 매입, 무역적자 및 무역외적자 보전에 사용되었다. 대외자산 매입의 경우 1996년말 현재 175억 달러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상당부분이 고금리를 노리고 동남아 지역에 투자된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의 통화폭락과 금융기관 및 기업들의 부도로 인해 투자원금의 회수가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1994년부터 1997년 11월까지 무역적자를 보전하는데 287억 달러가 사용되었고 무역외 거래에서 해외여행에 75억 달러, 기존 외채에 대한 이자지급에 99억 달러가 사용되었다. 총외채의 증가와 더불어 총외채에서 단기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하게 높다는 것도 문제이다. 1990년대 초부터 추진되어 온 외환자유화이후 단기외채비중이 급증하여 1990년 45.2%에서 1996년에는 58.2%로 증가하여 세계 최고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총외채가 증대되고 단기외채의 비중이 높아지는데도 정부는 외환위기를 의식하지도 못하고 더구나 단기차입은 무역금융과 관련 된 것으로 보아 특별히 규제를 하지 않고, 현지금융은 그 규모도 파악하지 못하는 등 위기관리능력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또한 외환위기 조기경보지표에 속하는 GDP대비 총외채 비중과 수출액 대비 총외채 비중이 급등하면 채무불이행(moratorium)에 대한 외국투자가들의 우려로 예금인출이 쇄도할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적절히 세우지 못하였다. 그 결과 국제금융시장에서 새로운 자금확보와 기존의 대출에 대한 회전에 실패하면서 외환위기가 현실화되었다.

(표 3) 우리 나라의 외채추이

구 분

'85년

'90년

'93년

'94년

'95년

'96년

총외채(억$)

단기외채비중(%)

1인당 총외채($)

총외채/GDP(%)

총외채/수출(%)

468

22.9

1,147

36.1

154.5

317

45.2

740

12.6

48.8

438

44

1,014

13.4

53.3

569

54

1,290

15.2

59.3

784

58

1,740

17.2

62.7

1,047

58.2

2,294

21.6

80.6

순외채(억$)

1인당 순외채($)

순외채/GDP(%)

355

870

27.4

64

150

2.7

79

183

2.4

102

230

2.7

171

380

3.8

347

762

7.2


한편, 많은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외화 자금을 단기로 조달하여 장기로 운영한 관계로 만기구조에 불일치(mismatch)를 보였다. 금융기간들은 단기로 외자를 들여와 리스 등 장기성 자금으로 대출함으로써 외화부채-외화자산간 불일치를 초래했고 기업 역시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단기로 자본을 들여와 장기 설비 및 시설에 투자함으로써 자금의 조달과 운영상의 불일치를 초래했다. 1997년 10월말 현재 종금사 외화조달·운용의 기간구조를 살펴보면 외자조달 중에서 단기외채의 비중이 64.4%인데 운용은 16.3%에 불과하며 외자조달 중에서 장기외채의 비중은 35.6%에 불과한데 운용은 83.7%에 달하고 있는 심각한 불일치로 유동성 부족을 초래하였다.

셋째는, 태국에서 촉발되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로 진행된 아시아의 금융위기가 우리 나라로 전염된 소위 전염효과(contagion effect)를 들 수 있다. 전염효과란 한나라의 통화가치 하락이 다른 나라의 통화에 절하압력을 미치는 효과를 말한다. 1997년 2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국제투기가들이 태국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하여 태국의 바트화가 절하된 것을 시발점으로 하여 태국의 위기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 아세안(ASEAN) 국가들의 통화가치를 절하시켰다. 이 전염효과에는 무역효과나 투자효과 등 경제에 영향을 주는 경제적 효과(economic effect)를 전염경로로 보는 견해와 외국투자가들의 인식변화에 영향을 준 경각효과(wake up call effect)를 전염경로로 보는 견해가 있다. 우리 나라는 동남아 국가에 직접투자 또는 간접투자를 많이 하였기 때문에 동남아 국가의 통화위기가 우리 나라에 영향을 준 투자효과도 있지만 외국투자가들이 동남아 국가들과 비슷한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도 유사한 통화위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본 경각효과가 단기적으로는 더 큰 것으로 생각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슨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과 같이 외국투자가들이 과거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준으로 우리 나라의 외채상환능력을 평가함으로써 대출의 연장을 거부하면서 우리가 심각한 유동성 부족을 겪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IMF경제위기를 초래한 장·단기적인 원인을 도식화 해 보면 <그림 1>과 같은데 이는 그 동안 앞만 바라보면서 쉬지 않고 뛰다보니 과로가 누적되어 체력이 급격하게 저하되었고 이로 인해 외부로부터 침입해 온 바이러스를 퇴치할 저항력을 순식간에 상실한 환자에 우리 경제를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1) IMF경제위기의 본질


4.IMF경제위기 극복전략(처방)

지금까지 우리는 IMF경제위기의 장·단기적인 원인을 살펴보았다. 원인이 진단이 되었으니 그에 대한 처방이 나와야 하는데 처방 역시 단기적인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전략과 장기적으로 IMF체제에서 벗어나는 전략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당면한 외환위기를 초래한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요인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책은 외국자본 유치전략이다. 외국인들의 국내 직접투자 및 주식투자 확대와 국내기업을 외국에 팔아서 외자를 확보하자는 전략인데 국내 직접투자 확대는 바람직하나 주식투자 확대는 단기투기성자금인 핫머니의 유입증대로 인해 단기적으로 더욱 국내 외환시장을 교란시킬 가능성이 있으며, 국내기업의 해외매각 전략을 살펴보면 부실기업은 너무 낮은 가격에 팔릴 것이며 외국인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한국전력이나 포항제철 등 국가기간산업의 매각은 경제의 자주성을 상실한 위험이 있다.

다음으로 외환위기를 초래한 간접적이고 장기적인 요인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책은 구조조정(Restructuring)이다. 이는 곧 IMF경제위기에 대해 우리가 취하는 반작용이며 또한 응전으로 볼 수 있는데 모든 경제주체가 그 동안 잘못되었던 궤도를 수정하고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얻는 효율성을 달성하고자 조직변화와 경제주체들의 행동변화를 꾀하는 작업이다.

한국경제는 현재의 IMF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동북아 경제권의 중심국가로 부상하느냐 아니면 추락하는 용이 되어 동북아의 주변국가가 되느냐 하는 중요한 시점에 있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좋은 의사결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여 독립적인 결정을 내릴 경우 서로에게 불리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는 소위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라는 것이 있다. 즉, 서로 개혁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협력의 비용지불을 남에게 미루고 자기는 무임승차(free ride)하겠다는 것이 죄수의 딜레마이다. 우리가 IMF체제를 극복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하여 모든 경제주체가 제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정부는 자유보장·자기책임·경쟁·공정성·투명성 등 자유주의의 일반원칙 아래 새로운 '게임의 법칙(rule of game)'을 정하고 심판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금융기관들은 정부의 통제와 보호에서 벗어나 자기책임의 원칙 하에 대출심사기능을 강화해야 하며 담보위주금융·외형확장·비효율적 자금운영 등 과거의 경영방식에서 탈피해야 하고, 기업도 과거 외형 위주의 성장에서 수익성·안정성·유동성을 모두 고려한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소비자들은 소비자 주권의식을 가지고 합리적 소비생활을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소비문화를 창출하고, 건전한 소비전략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근로자들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버리고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고용을 목표로 끊임없는 자기계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 앞에는 세 종류의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첫째는 구조조정을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하여 빠른 시일 내에 재도약을 할 수 있는 V자형 미래이며 둘째는 오랜 진통을 거듭한 후에 구조조정을 완료하여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재도약을 할 수 있는 U자형 미래이며 셋째는 구조조정에 실패하여 재도약을 하지 못하는 L자형 미래이다. 어떠한 미래를 우리가 맞이할 것인가 하는 것은 어떠한 방법으로 구조조정을 할 것인가 하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