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과 식구됨을 고하며
1993년 3월 1일자로 제주대학교 경제학과의 한 식구가 되었다. 나의 강의를 들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나에 대해 익숙하겠지만 나의 강의를 들어보지 못한 일부 학생과 동문들은 생소할 것이다. 지면을 통하여 상견례를 하고자 이 글을 쓴다.
나는 1960년 5월 2일 우리 나라에서 3번째로 큰 섬인 경남 남해에서 4남 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신 태몽은 어머님이 칠흙같은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데 한줄기 빛이 있어 집어 보니 금반지였다고 한다. 아버님은 양복점을 경영하셨고 어머님은 여러 가지 장사를 하셨다. 나는 어린 시절 아버님의 근면·성실하심과 어머님의 아량 있으신 넓은 마음을 보며 자라났다. 어린 시절에는 골목대장을 하였는데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우리동네(북변동) 친구들을 모아 축구팀을 만들어 다른 동네 아이들과 내기 축구시합을 하였던 일이다. 지금의 프로축구로 말하면 구단주, 감독 겸 주전선수였다. 이러한 나의 前歷은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인정을 받아 당시 남해군 축구의 명문인 해양국민학교에서 3년 동안 포워드(forward)로 명활약을 하였다.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시합도중 골을 넣었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중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 공부에 매력을 느껴(신체적인 조건으로 볼 때 축구로 밥벌이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벌레같이 공부를 하였다. 미국 유학시절을 빼고는 내가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시절은 중학교 시절이었던 것같다. 그 당시 중학교에 들어가면 머리를 완전히 깎아야 했는데 머리를 깎기 실어 중학교 입학식 전날 많이들 이발을 많이들 하고 했다. 그러나 나는 12월 6학년 마지막 겨울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머리를 깎고 겨울방학을 비상체제로 선포하고 일체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공부만 하였다. 남해중학교에 입학하여 1년 동안 학교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청운의 꿈을 안고 부산 배정중학교로 전학을 하였다. 부산으로 전학하여 학교에서 신체검사를 받는데 적록색약으로 판정이 되어 당시 부산에서 최고로 유명한 김안과에서 확인을 마친 후 어릴 적부터 되고 싶었던 의사를 눈물을 흘리며 포기하고 교수가 되기로 작정을 하였다. 그때부터 주의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교수가 적격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고등학교는 추첨으로 금성고등학교에 배정이 되었지만 당시 학교에서 치른 입학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을 하였다. 그 덕분에 년4회에 걸쳐 장학금을 받았지만 장학금을 주는 사람이 미국사람이라 장학금을 받을 때마다 후원자에게 감사편지를 쓰는 힘든 일도 겪었다. 단시 금성고등학교는 부산의 인문계 고등학교 중 진학성적이 좋지 않은 학교로 유명하였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매일 학교 불평만 하고 다녔는데 그러한 것들이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예비고사 성적표를 받았을 때였다. 진학을 앞두고 지망학교와 학과를 결정해야 했는데 원하던 s대학과 과(경제학과 또는 영어영문학과)를 갈 성적이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고려대학교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 학교를 선택한 것은 본고사 출제경향(그 당시는 예비고사 340점과 국어.영어.수학 등 본고사 360점을 합하여 총점 700점이었다)이 나에게 적합했고 경제학과를 선택한 것은 분배문제를 공부해 보고자 하는 뜨거운 가슴 때문이었다. 교수를 하려면 미국에서 공부를 해야한다고 하기에 고등학교 3년 동안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지금도 가슴 뿌듯하게 생각하는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일년동안 송성문의 [정통종합영어] 책을 5번 완독한 것과 영어단어를 외우느라 모나미 볼펜을 하루에 한 자루씩 사용했던 일이다.
대학교에 들어가 일찍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로 생각하고 영어공부와 전공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방학을 잘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기 중에는 학과공부와 영어공부를 병행해서 공부하고 방학 때는 주로 영어공부에 전념하거나 영어공부겸 전공을 깊이 공부하기 위해 영어로 된 전공서적을 읽기도 하였다. 경제학 분야에서는 나는 경제이론보다는 방법론에 관심이 많았다. 경제이론은 하나의 가설이며 그 가설의 진위를 검증하기 위해서 방법론이 이용된다. 미시경제이론이든 거시경제이론이든 도표를 이용하여 이동의 방향만을 표시해 주는데 나는 만족하지 않고 구체적인(또는 현실적인) 이동의 크기를 알고자 했다. 그리하여 나는 통계학과 계량경제학을 열심히 공부하였다. 교수님들로부터 강의를 들을 때마다 먼 훗날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보며 나의 기준으로 바람직한 교수상을 가진 교수님을 찾아보았다. 그 당시 나에게 가장 좋은 교수상을 남긴 분은 국제무역을 가르치신 서상철 교수였다(지난번 12.21 개각 때 보사부 장관으로 입각한 서상목과 서강대 서상용 교수는 서상철 교수의 아우로서 세분 모두 경제학 박사이다). 철저한 강의준비와 여유 있고 인자한 강의는 당시 명강의로 유명하였다. 그 후 입각하여 동자부 장관으로 재직중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사건으로 작고하셨다.
대학을 졸업한 후 바로 유학을 떠나고자 하였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현 보람은행의 前身인 금성투자금융에서 1983년 1원 4일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3년반 동안만 직장생활을 하겠다고 생각하였으나 최초의 근무지에 좋은 인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였다. 1983년 2월 27일 5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당초의 생각대로 1986년 6월 30일자로 퇴직을 하였다. 1986년 7월 27일 당시 임신 중이던 wife와 함께 미국으로 향하였다. 미국의 3대도시인 시카고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는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뜨겁게 쏟아 올랐다.
내가 다니던 아이오와 주립대학(Iowa State University)은 미국 주정부에서 땅을 무상으로 주어 학교를 설립하게 한 미국내 11개의 land grant 대학 중의 하나이며 24000여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에임스市는 인구가 5만 정도인 미국의 전형적인 대학도시이다. 아이오와주는 미국의 대표적인 농촌주로 콩과 옥수수가 많이 나는데 여름이 되면 어디를 가나 쑥쑥 자란 옥수수를 볼 수 있다. 아무리 달려도 지평선만 보이는 엄청난 땅이다. 1992년 1월 20일 경제변동분야의 [경기순환의 부문적 분석:총체적 충격과 부문충격의 역할]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 5년 반 동안 공부하였는데 나의 학문적 취향은 이론보다는 방법론이었다. 학부 때부터 방법론에 관심이 있었고 또 준비가 되어 있어 대학원에서도 나는 통계학과와 경제학과를 오가며 통계학의 여러 과목과 경제학 중에서는 거시경제학 및 계량경제학을 열심히 공부하였다. 미국에 있는 동안 나는 크게 3가지를 얻고 3가지를 잃었다. 3가지를 얻은 것은 나의 귀여운 두 딸(세라, 세리)과 학위와 교회·사회활동을 통한 유익한 경험이며 3가지를 잃은 것은 학위취득 한 달을 앞두고 어머니께서 별세하신 것과 풍성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많았던 머리카락이 빠져 빛나리 아저씨(?)가 된 것과 오른쪽 눈 망막에 눈물 2방울이 생겨(rectinal tears) 레이져로 수술을 하였으나 깨끗한 시력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1992년 2월 7일 귀국하여 2월 20일부터 동양경제연구소에서 거시계량모형을 개발하는 임무를 받고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였다. 학위 취득 후 첫걸음에 교수가 되는 꿈이 실현되지는 못하였으나 나는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하였다. 언젠가는 학교로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잠깐 외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던 중 제주대학교에서 교수채용이 있어 여러 교수님의 도움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품어오던 꿈이 이루어졌다. 이곳에서의 지난 두 학기는 참으로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었다. 가르치는 일이 처음이라 여러 가지로 힘든 일도 많았지만 열심히 하였다. 1학기에는 5과목(총 130명)을 가르치고 2학기에는 4과목(총 210명)을 가르쳐 학기 중에는 거의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다. 여름방학에는 연구에 전념하여 2편의 논문을 완성하였다. 하나는 제대논문집(제 37집)에 나올 예정이고 다른 하나는 1993년 3월 한국경제학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학생들과의 만남도 참으로 좋았다. 경제학과 M.T 때 떨리던 목소리로 '제비'와 '사랑이여'를 부르며, 경상대학 축제 때 씨알광장에서 '가고파'를 불렀던 일, 경상대학 체육대회 중 여자배구 결승경기 때 채신머리없게(?) 응원했던 일 등 여러 가지가 기억난다.
이상으로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였는데 끝으로 학생들과의 면담을 통해 느꼈던 몇 가지를 정리해서 여러분들에게 이 글을 통하여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첫째는, 학생들에게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향해 정진하되 승부욕을 가질 것을 당부하고 싶다. 흔히들 인생을 100m를 달리는 단거리가 아니고 42.196km를 달리는 마라톤에 비유한다. 즉, 단기에 승부를 내지 말고 꾸준히 장기적인 비젼(vision)을 가지고 살라는 뜻일 것이다. 나도 여기에 동감한다. 그러나 우리가 잊기 쉬운 것은 마라톤에서도 매 5km마다 lap time(도중 時計)이 있다는 것이다. 이 기록이 좋지 못하면 신기록을 세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선두그룹에서도 낙오된다. 따라서 마라톤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매 5km마다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것을 비유로 하여 우리들의 인생을 살펴보면 유년기,소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 등의 lap life가 있다는 말이다. 성공적인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각 lap life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특히 여러분은 청년기 중에서 4년이라는 시간이 제한된 대학생활을 하고 잇다. 4년 안에 여러분이 승부를 걸어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시간은 흐른다. 준비하지 못한 자는 승부를 걸 시간적인 여유가 없거나 있어도 승리하기에 너무 짧은 시간을 가진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The sooner, the better). 둘째는, 경제학도로서 경제학적인 사고를 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경제학적인 사고로 훈련된 사람을 문제를 제기하고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전략가가 될 수 있다. maurice Levi는 그의 저서 [Thinking Economically]에서 다음의 4가지 경제학적 사고를 말하였다. ①실증적 사고(Thinking Positively. 주관적 가치의 개입을 배제한 논리적인 사고: 계량경제학) ②미시적 사고(Thinking Small. 선택의 문제에 직면할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미시경제학) ③거시적 사고(Thinking Big. 경제환경 변화에 국가 전체는 어떻게 행동하나?: 거시경제학) ④개방적 사고(Thinking Aloud. 다른 나라와는 어떠한 경제적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국제경제학). 셋째는, 경제이론 및 분석도구(framework)를 열심히 습득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현실경제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 적용능력을 키우라고 당부하고 싶다. 나는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학문적으로는 경영학에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 않지만 취업에 있어서는 상당히 위기감을 느낀다. 기업체에서는 경제학보다는 실용적인 경영학을 전공한 학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대학정원도 경영학이 경제학보다 훨씬 많다. 이것은 경영학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경제학과의 교육내용이 그 동안 현실세계와는 별 관계가 없는 이론에만 치우쳐 지식놀이만을 해 왔기 때문이다. 학부에서 경제학의 교육과정도 경제이론과 현실문제가 조화될 수 있도록 개편이 되어야 겠으나 학생들도 경제이론의 단순한 습득에만 만족하지 말고 현실적인 경제현상을 습득한 경제이론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 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사채시장의 고금리현상과 은행의 양건예금(꺾기)를 미시경제학의 수요-공급 분석도구로 설명할 수 있으며 채근의 신경제, 금융실명제, 제2단계 금리자유화조치 등 경제정책의 변화가 거시경제변수에 미치는 영향도 IS-LM이나 총수요-총공급의 일반균형적인 분석도구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에서 말씀드린 3가지가 준비된 학생은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학을 공부하였으나 준비가 되지 않은 학생보다 개인적인 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단기적인 승부도 물론이고 장기적인 마라톤 경기에서도 남보다 앞서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