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춘 집사
경제활동을 하는 경제주체는 크게 가계, 기업, 정부 등이 있다. 가계는 노동 및 자본을 기업에 공급하고 그 대가로 받은 임금과 이자소득으로 소비와 저축을 한다. 기업은 가계에서 공급받은 노동과 자본을 가지고 상품을 생산하고 상품판매로 수입된 돈으로 가계에 임금과 이자를 지불하고 또 생산을 위해서 재투자를 한다. 정부는 가계와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여러 가지 정부활동에 지출을 한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가계, 기업, 정부 등 세 경제주체는 경제 내에서 맡은 바 고유의 역할이 있지만 또한 서로 유기체적으로 관련이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경제주체가 맡은 바 역할을 잘 하지 못하면 경제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우리 나라 경제주체들이 제대로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총체적 경제난국'이라고 불리고 있는 한국경제의 현실을 진단하고 신앙인의 관점에서 그 처방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로, 가계를 진단해 보자. 가계의 구성원은 소비자 즉 우리자신들이다. 오늘날 가계의 문제점은 과소비와 노동의욕의 감소이다.
소득수준에 따라 소비수준도 달라지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주변에서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는 과소비의 예는 많이 찾을 수가 있다. 유명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cquinas)는 그의 『신학대전』에서 "아무리 축적된 자산이 많아도 필요한 개인적 소비 이상으로는 함부로 소비하거나 낭비하지 말아야 하고 남은 자산은 하나님의 처분에 맡겨야 한다"라고 했다. 과소비를 하게 되면 그렇지 못한 자들과 위화감을 만들게 되고 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과소비를 흉내내게 만드는 사회 비윤리적인 면과 물가가 오르게 되고 외국의 비싼 제품들을 많이 수입하게 되어 국제수지도 악화되는 경제적인 면이 있다.
또한 젊은이들의 노동의욕이 감소하여 제조업에 심각한 노동력 부족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수고하며 땀 흘리며 돈버는 제조업 대신에 손쉽게 돈버는 서비스업을 선호하여 국내 전체 생산액 중에서 제조업은 감소하고 서비스업은 증가하였다. 또한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자들도 임금이 오른 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아 87년 이후로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임금상승율을 밑돌고 있다.
둘째로, 기업을 진단해 보자. 오늘날 기업의 문제점은 기술혁신에 대한 투자미흡과 부동산 투기 등을 들 수 있겠다.
그 동안 정부의 수출지향적인 고도성장정책 하에 많은 혜택을 누려온 기업들이 기술개발에 대한 연구투자에 소홀히 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제품이 아래로부터는 아시아 개발도상국 제품과 가격경쟁에서 밀리고 위로부터는 선진국 제품과 품질경쟁에서 밀려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기업의 총매출액 중에서 연구투자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0.1%로 기업의 접대비(0.3%)나 광고비(0.8%)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편, 장기간에 걸쳐 이익이 발생하는 연구투자보다는 단기에 이익을 내는 부동산으로 눈을 돌려 업무용 토지 외에 많은 비업무용 토지를 소유함으로써 토지가격을 상승하게 만들어 토지의 실수요자인 가계에서 많은 피해를 주었다. 가계에서 아껴서 은행에 저축한 돈을 기업은 은행에서 빌려 연구투자 등 생산활동을 증가시키는데 쓰지 않고 부동산투기를 함으로써 지가(地價)를 상승시켜 가계에게 불이익을 주었다. 기업의 생리가 가능한 한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기업의 본연의 역할인 생산활동을 통한 최대이윤의 추구가 전제되어야 한다.
셋째로, 정부를 살펴보자. 정부의 문제로는 정부정책의 신뢰성 저하 및 민간경제에 대한 지나친 정부간섭을 들 수 있겠다.
자본주의하에서 경제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기초한 시장원리에 의해 움직이게 되어 있다. 여기에서 시장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분야(이것을 경제학적 용어로는 시장기능의 실패(market failure)라고 하는데 그 예로는 공공재(公共財), 공해, 소득재분배, 독과점 등의 문제가 있다)에 대해서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이러한 분야의 정부개입 이외에도 통화량 및 금리 등 금융분야에도 지나친 간섭을 하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민간경제에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
또한 정부가 정책을 수립하는데 있어서도 국민의 다수를 위하기보다는 소수의 기득권 계층에 유리한 정책을 세우거나 토지공개념 및 금융실명제 실시의 후퇴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가진 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정부의 정책이 많은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고 신뢰를 받지 못한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 교수인 A. Blinder는 바람직한 경제정책의 운용방안으로 '강한 두뇌와 부드러운 가슴'(hard head and soft mind)을 들고 있다. 여기서 '부드러운 가슴'의 경제정책이란 가진 자 보다는 다수의 경제적 약자를 돕는 경제정책을 말한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백성은 흙으로 밭을 삼는데 관리는 백성으로 흙을 삼는다'라고 하였다. '늑대와 소년'의 이솝우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면 아무리 정부가 효과적인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고자 하여도 그 정책은 신뢰성을 잃어 효과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주체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오늘날 더 안타까운 사실은 자기들의 잘못을 살펴보기보다는 서로 상대방에게 잘못을 전가하고 있다. 가계는 기업에 대해 생산성을 앞지르는 지나친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기업은 생산활동보다는 부동산투기 등 財테크에 더욱 관심을 가지면서 임금상승 때문에 기업활동을 못하겠다고 불평하고, 정부는 일관성 없는 경제정책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경제에 구조적 모순이 생겨난 것은 생각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기업에 돌리려는 등 자기 눈의 들보보다는 형제의 눈의 티끌을 찾기에 바쁘다. 총론적으로는(즉, 사회 전체적으로는) 오늘날 우리경제가 안고 있는 고물가, 고금리, 국제수지적자 등의 경제문제 해결에는 모두 공감을 하고 있으나 각론으로 들어가서는 (즉, 가계, 기업, 정부 등) 자기들의 잘못된 경제행위를 바꾸지 않고 경제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받들어 섬기는 여러 지체의 중요성과 그 맡은 바 역할에 대해 에베소서 5장 16절에서 말씀하셨듯이 가계나, 기업이나, 정부 모두 경제를 이끌어 가는데 중요하며 그 맡은 바 역할일 막중하다.
가계나, 기업이나, 정부의 구성원은 모두 사람들이다. 따라서 경제활동을 하는 한사람 한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오늘날 천만을 넘는 크리스천들이 가계, 기업, 정부의 구성인으로 매일 경제활동을 영위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사회는 더욱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집단이기주의까지 등장하여 사회가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찾기에만 급급하는가? 크리스천이라고 자칭하는 많은 자들이 믿음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는 이원론적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능력 없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소비하며 일하기 싫어하는 크리스쳔들, 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하고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리는 크리스천 경영자들, 다수의 국민을 위한 정책수립보다는 소수의 가진 자를 위한 정책을 만들기에 골몰하는 크리스천 경제관료들...... 이들을 과연 예수께서 제자라고 인정해 주실까?
아퀴나스가 말한 기독교의 윤리대로 소비하는 소비자, 에베소 6장 5-9절에서 말하는 기업주와 고용인의 관계대로 행동하는 기업 및 고용자,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을 위하는 정부가 서로 유기체로써 협력할 때 우리경제는 앞날이 밝을 것이다. 이 일들을 위해서 먼저 예수의 제자가 되기를 진정으로 원하는 크리스천들이 소비를 함에 있어서, 기업을 경영함에 있어서,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서 솔선수범하여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겠다. '나 하나쯤' 어떻게 하든 우리 나라 경제에 무슨 영향이 있겠느냐 하는 생각에서 '나 하나만이라도' 경제윤리대로 행동하겠다고 하는 적극적 사고와 결단이 이 시대에 요구된다고 하겠다. (1992.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