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가치관을 정립하자

강기춘 집사

미국의 경제학자 갈브레이드(J.K.Galbraith)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Uncertainty)'라고 불렀다. 나는 오늘날 우리는 무엇이 진리인지 구별할 수 없는 '혼돈의 시대(The Age of Chaos)'를 살아가고 있으며 올바른 가치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닥치는 대로 대응하는 '가치관 부재의 시대(The Age of Value-Absence)'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확실하며, 질서정연하며, 바른 가치관을 제시해 주는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 인간의 교만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정치.경제.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기적이며 완전하지 못한 인간의 논리를 의지하기보다는 우리 인간을 위하여 주신 완벽한 하나님의 법에 의지해야 한다. 같은 논리로 오늘날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여러 종류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완전치 못한 이 세상 지식인들의 논리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들을 축복해 주시기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해결책을 찾는 것이 하나님 자녀로서의 지혜로운 처신일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성경에서 제시해 주고 있는 올바른 가치관이 무엇인 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IMF경제체제로 한국경제가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였을 때 경제학자들은 여러 가지 진단과 처방을 내 놓았었다. 그러한 처방들이 이전의 처방들과 다른 점은 이전에 경제가 침체하였을 때에는 근본적인 처방들보다는 단기적인 대증요법(對症療法)들이 많았으나 IMF경제체제 이후에는 근본적인 처방들이 많이 나왔다. 그러한 처방들 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 중의 하나는 우리 경제가 재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들이 새로운 경제가치관(또는 경제윤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새 시대에는 새로운 직업윤리, 새로운 기업윤리, 새로운 정부윤리 등 새로운 경제윤리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S대의 S교수는 한국경제가 재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새 경제윤리가 필요한데 그 새 경제윤리로 한국의 전통적인 유교윤리와 자본주의정신을 접목시킨 신유교 윤리론을 제창하였다.

그러나 나는 크리스쳔 경제학자로서 새 경제윤리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어떠한 경제윤리를 가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한다. 현재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 개발하여 만들어낸 새 경제윤리가 아니고 현재 우리가 바탕을 두고 있는 경제윤리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철저히 생활화하는 것(이런 의미에서 새 경제윤리라고 생각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가 바탕을 두고 있는 경제윤리란 무엇인가? 자본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우리경제는 자본주의 경제윤리에 그 바탕을 두고 있으며 자본주의 경제윤리는 청교도윤리에 그 토대를 두고 있으므로, 우리는 먼저 철저하게 성경중심적인 청교도윤리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첫째, 일이 천하건 귀하건 간에 남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드는 일이면 성직(聖職)이라는 천직의식(天職意識)이다. 이러한 천직의식은 부단한 자기노력과 더불어 슘페터(Schumpeter)가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핵이라고 말한 혁신(innovation)과 발명(invention)을 가능케 하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자기 직업에 만족하는 사람이 너무나 적다. 그래서 이직율이 높다. 그리고 보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직업의 귀천을 나누어 버리기 때문에 힘들고 더럽고 위험하고 보수가 적은 소위 3D업종에는 노동력이 부족하여 외국 노동자를 고용하게 되고 별로 힘 안 들고 쉽게 돈을 버는 유흥업을 포함한 서비스업에 많은 노동력이 몰리고 있다.

둘째, 신의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이 성직을 열심히 해야 하며 그 결과는 물질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부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부와 재물의 근원임을 말하고 있다(잠 8:18, 전 5:19). 또한 성직을 여鱁심히 수행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물질을 선용(善用)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눅 10:35, 딤전 6:17-19). 우리 자신과 가족들의 필요만을 위해서 물질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을 돌아볼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신 14:28-29).

셋째, 검소, 근면, 청렴, 정직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과소비를 보자. 물론 소득수준에 따라 과소비에 대한 기준도 달라지겠으나 속옷 한 장에 몇십만원씩 주고 사는 것은 분명 지나친 소비일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국세청에서 정한 과소비의 기준이 있다. 예를 들면, 운동화는 8만원 이상, 기성복 양복은 50만원 이상이면 과소비이다. 사회 곳곳에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제 몫 챙기기'에 바쁘다. 정치인으로부터 교육자에 이르기까지 물질에 깨끗하지 못하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하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회사의 돈을 사용함에 있어 정직하지 못한 부분이 너무나 많다. 심지어는 교회의 돈을 사용하는데도 정직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넷째, 성직을 열심히 해서 재산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이를 근검과 절약을 통해 불려나가야 한다는 재산관이다. 근검과 절약을 강조한 재산관은 저축과 투자를 가능케 함으로써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국제화, 개방화의 흐름 속에서 근검과 절약을 통해 재산을 축적하기보다는 재(財)테크라고 불리우는 투기적인 경제행위를 통해 재산을 축적하려고 하였다. 한 사람이 아파트를 50여 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투기적인 재산축적의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우리는 그것들을 관리하도록 위임받은 자에 불과하다는 청지기 의식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유이고 우리는 관리를 위임받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우리의 소유인 것처럼 마음대로 사용하고, 사용목적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개인의 만족을 극대화시키는 데 있다. 우리 인간은 땅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는 책임을 받음으로써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도 있었으나 그러한 특권을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필요를 마음껏 채우며 자기 중심적인 관리에만 집착하여 자연을 파괴하여 왔다. 물질과 시간 역시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함으로써 물질과 시간에 대한 청지기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으로는 이레중 하루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하고(출 20:8-11) 물질로는 십일조(말 3:10), 감사(신 14:22-27)와 구제헌금(신 14:28-29)을 드려야 하나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나님께서 관리하도록 위임하여 주신 자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자연이 파괴되고 오염된 것같이 우리가 시간과 물질 관리자의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우리의 신앙생활과 영적 생활이 건전하게 성장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 오염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나라의 경제생활을 살펴보면 잘못되어 있는 모습이 너무나 많다. 물질만능주의와 극도의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과소비가 사회전반에 퍼져있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불법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고 이웃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기만이 잘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을 친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 종말이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 역시 이러한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그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어 묘안을 찾고 있을 것이다. 대응책을 마련함에 있어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법을 배우자. 오늘날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환경문제라든가 우리 경제가 안고 있고 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경제현안들의 해결원리를 성경에서 찾자. 우리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데 있어 바른 경제가치관을 갖게 하고 바른 삶을 사는데 필요한 생활원리와 지혜를 성경은 제시해 줄 것이다.(1993.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