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이상

(Ayn Rand 저, 강기춘 역: 자유기업센터)

번역에 부쳐


   

   아인 랜드Ayn Rand는 소설가이며 철학자이다. 그녀는 형이상학, 논리학, 윤리학, 정치경제학 등 여러 분야에서 기존의 접근방법에 강한 도전장을 던지며 객관주의Objectivism라는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 내었다. 그녀의 학문적 취향은 자유를 개인 권리로 간주하고 자유를 빼앗는 국가의 강제적 행위는 부도덕하다고 주장하는 자유지상주의적 권리이론가에 속한다. 그러나 그녀는 학자라기보다는 사상가여서 학문의 세계에서는 크게 환영을 받지 못하였으나 일반대중으로부터는 큰 호응을 받았다. 그녀는 생전에 소설을 포함하여 십여 권의 책을 출간하였고 그녀의 사후에도 지속적으로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그녀의 책들은 2,000만부 이상이나 팔렸고 현재도 매년 30만부 이상 팔리고 있다. 또한 그녀의 대표적인 소설인 {지성인들의 파업Atlas Shrugged}는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영향력이 있는 책이다.

그녀는 1905년 러시아의 생트페테르스부르그St. Petersburg에서 출생하였고 6세 때부터 글을 읽기 시작하여 9세 때 소설가가 되기를 결심하였다. 고등학교 시절에 케렌스키 혁명Kerensky Revolution과 볼셰비키 혁명Bolshevik Revolution을 겪었는데 이 혁명의 와중에서 약국을 경영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공산주의자에게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였다. 고등학교 마지막 해에 미국사를 공부하면서 그녀는 미국을 동경하였다. 그녀는 페트로그라드 대학University of Petrograd에서 철학과 역사학을 공부하고 1924년 대학을 졸업하였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하여 주립 영화예술학교State Institute for Cinema Arts에서 수학하던 중 1926년 미국으로 건너 왔다.

할리우드에서 조연으로 출발하였고 1929년에는 영화배우 프랭크 오코너Frank O'Connor와 결혼하여 이후 그가 죽기까지 50년 동안 해로하였다. 1933년부터 시작하여 몇 권의 소설을 출간 한 후 1957년 그녀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며 마지막 소설인 {지성인들의 파업Atlas Shrugged}을 출간하였는데 이 소설에서 그녀는 자신의 철학을 윤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정치학, 경제학 등을 통합하는 수준 높은 추리 소설의 형태로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그 이후로는 자신의 철학인 객관주의에 대해 글을 쓰고 강연을 하였고 1962년부터 1976년까지 스스로 정기간행물을 편집하여 출간하였다. 1982년 그녀는 사망하였는데 인간에 대한 그녀의 비전과 지구상에서의 삶을 위한 그녀의 철학은 수많은 독자들의 삶을 변화시켰고 미국 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쳐 왔다. 아인 랜드의 일대기에 관한 영화인 "아인 랜드: 삶에 대한 감성Ayn Rand: A Sense of Life"이 1997년 아카데미 최우수 기록영화상에 지명되었고 그녀의 객관주의 철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아인 랜드 연구소Ayn Rand Institute가 (이 연구소의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aynrand.org이다)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녀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인 랜드의 철학인 객관주의가 기존의 접근방법과 어떠한 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객관주의는 오늘날의 문화와 대학을 지배하고 있는 사상인 신비주의, 이타주의, 집단주의, 허무주의, 환경보전주의, 국가통제주의 등에 대한 급진적인 대안을 제시해 준다. 또한 2,000년 이상 지속되어 온 사상에 도전하고 새 문예부흥new Renaissance의 토대를 제공해 준다. 객관주의는 깊은 연구가 필요한 완전하고, 체계적이며, 통합된 사상 체계이다. 객관주의는 그녀 자신이 묘사한 것처럼 지구상에서의 삶을 위한 철학이며 인간이 자신에게 적합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인간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추상 원리들abstract principles를 정의한다. 그녀를 포함한 객관주의자들의 접근방법에 대해서는 객관주의자 소식지The Objectivist Newsletter의 창간호(1962년 1월)에 실려 있는 다음과 같은 랜드의 글에 잘 요약되어 있다.

"객관주의는 철학적인 운동이다. 정치학은 철학의 한 분야이므로 객관주의는 어떤 정치적인 원리 - 특히, 자유방임 자본주의 - 를 근본적이고도 철학적인 원리의 결과와 궁극적이고도 실제적인 적용으로서 지지한다. 객관주의는 정치를 분리된 목표나 기본적인 목표로 간주하지 않는다. 즉, 정치를 넓은 이념적인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도 달성할 수 있는 목표로 간주한다.

정치학은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등 세 개의 다른 철학적인 분야에 근거하고 있고 또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론 및 인간과 실존의 관계에 관한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정치학은 누군가가 일관성 있는 정치이론을 만들어 실제로 그것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우리 객관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우리들은 급진적 자본주의자들이다.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지 못했던 철학적 기초, 그것이 없이는 자본주의가 사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그러한 철학적 기초를 위해 우리들은 싸우고 있다."

객관주의의 기본 원리들을 철학의 네 분야로 나누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형이상학metaphysics에 있어서 객관주의는 현실reality은 인간의 의식, 지식, 믿음, 감정, 욕망, 공포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동일률law of identity을 의미하며 인간의 의식이 하는 일은 현실을 인지하는 것이지 현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객관주의는 초자연적인 믿음을 거부하고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자신들의 현실을 만들어 낸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인식론epistemology에 있어서 객관주의는 인간의 이성reason은 현실의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으며 인간이 모든 감각을 통해 느끼는 물질을 인식하고 통합하는 기능을 하므로 이성만이 인간이 지식을 습득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고 이성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수단이지만 이성을 발휘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객관주의는 지식 수단으로서 믿음이나 감정과 같은 것을 받아들이는 신비주의mysticism를 거부하고 확실성이나 지식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회의론skepticism을 거부한다. 또한 인간은 인간의 통제밖에 있는 힘의 (예를 들어, 신, 운명, 유전자, 경제 상황 등) 희생물이라는 결정론determinism을 거부한다.

윤리학ethics에 있어서 객관주의는 이성만이 인간이 가지고 유일한 가치 판단의 기준과 행동 지침이 되며 합리성이 인간의 기본적인 미덕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인간은 자신이 목적이며 다른 사람들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거나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서는 안되고, 자신의 행복 추구를 최고의 도덕적 목적으로 하면서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야 하며 합리적인 사리사욕self-interest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객관주의는 다른 사람이나 사회를 위한 삶을 주장하는 이타주의altruism를 거부한다.

정치학politics에 있어서 객관주의는 어떤 사람도 폭력이라는 수단에 의해 다른 사람들의 가치를 빼앗을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폭력을 먼저 사용할 권리는 없고 다만 자기방어나 폭력을 먼저 사용한 사람에 대항할 경우에만 폭력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도록 자유로운 쌍방의 동의mutual consent에 의해서 서로 거래자traders로 대해야 하며 이러한 인간 관계에서 폭력을 추방하는 유일한 사회 체제는 자유방임 자본주의laissez-faire capitalism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는 재산권property rights을 포함한 개인 권리를 인정하는 체제이므로 정부의 역할은 단지 개인 권리를 보호하고 폭력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파시즘fascism이나 사회주의socialism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집단주의collectivism를 거부하고 정부가 경제를 통제하고 부富를 재분배해야 한다는 현재의 혼합 경제mixed economy를 거부한다.

이 책은 객관주의의 창시자이며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지지자인 아인 랜드의 경제철학 사상과 현실문제에 대한 그녀의 깊은 통찰력을 국내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번역되었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이론 및 역사에 대한 에세이 모음집으로서 그녀의 에세이 18편과 다른 사람의 에세이 6편 등 모두 24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녀 자신이 편집하였던 정기간행물에 실린 글들과 초청강연의 원고들이다.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은 자본주의가 도덕적이며 개인 권리 및 자유 사회와 일치하는 유일한 경제 체제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자본주의의 도덕적 본질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특허 및 저작권, 공중파의 소유권 문제 등에 대한 중대한 오류들에 대한 반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으며 또한 학생 폭동, 중상모략술, 보수주의 등 1960년대 미국 사회의 현안들에 대한 놀라운 철학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국경제와 사회에 관한 많은 시사점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건국이래 초유의 위기국면에 처해 있으며 이러한 국면에서 빠른 시일 내에 벗어나기 위하여 각 분야의 구조조정을 포함한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때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은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며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과 대안을 제시해 줄 것이다. 특히,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 - 개인 권리의 침해, 재산권의 침해, 여론 정치, 경제철학 부재 등 - 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은 제공해 줄 것이다.

번역본의 주요 내용들

제1부 이론과 역사

제1장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철학이 19세기에 분리되고 20세기에 붕괴됨으로 말미암아 인문학이나 과학 등 다른 현대의 과학들도 유사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학문인 정치경제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치경제학은 암묵적으로 그리고 무비판적으로 집단주의collectivism의 근본적인 교의를 공리로 채택하고 있는데 그 교의란 자원은 공동으로 소유되며 정치경제학의 목표는 "공동의 선the common good"을 위해 이러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타주의의 윤리와 정치적 국가통제주의political statism에 영향을 받아 집단주의는 인간을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부족으로 보며 부富는 사회와 부족의 생산물로 본다. 저자는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의 "자본주의"에 관한 설명을 인용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설명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정치경제의 접근방법에서 이러한 부족 전제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인간을 다른 생물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인 인간의 합리적 재능rational faculty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며 이를 인정하는 것은 곧 개인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인간 정신은 기본적인 생존 수단이며 지식을 습득하는데 필요한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나 인간은 전지전능하지 않으므로 자신의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자유롭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유가 인간 정신의 필수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어떤 사회 체제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회가 개인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가 하는 것인데 인류의 역사를 볼 때 자본주의가 재산권을 포함하여 개인 권리를 인정하는 유일한 체제이다. 개인 권리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에서 폭력이 추방되어야 하는데 이 일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부가 해야 할 유일한 기능이다. 한편, 어떤 사회 체제의 확립, 변화, 진화 및 파괴를 결정하는 힘은 철학인데 철학의 네 분야와 대응되는 자본주의의 네 가지 근본원리는 형이상학적인 면에서는 인간 본성 및 생존의 필수조건이고, 인식론적인 면에서는 이성이고, 윤리적인 면에서는 개인 권리이며 정치적인 면에서는 자유이다.

인류 역사의 모든 사회 체제가운데 자본주의는 폭력에 의한 지배와 양립할 수 없고 객관주의의 이론에 근거하고 있는 유일한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명시화되지 못했던 것은 역사적인 비극인데 그 책임은 자본주의 적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자본주의의 합리성과 도덕성을 제대로 주장하지 못한 자본주의 옹호자들에게 있다고 저자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제2장 전쟁의 근원

국가통제주의는 폭력이란 인간 생존과 인간 사회에서 적절하며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전쟁이 발생해 왔다. 오늘날 국가통제주의자들은 평화 운동을 펴고 있는데 그들은 무장한 적에 대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무장해제된 사람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음으로써 독재 정권을 허용하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다.

국가통제주의의 사상적 근원은 부족 전제이다. 즉 부족이 최고의 전능한 통치자이며, 부족이 구성원들을 자기 마음대로 희생시킬 수 있고, 부족의 "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에는 구성원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원시시대 야만인들의 견해이다. 국가통제주의 하에서는 한 나라가 폭력으로 자기 국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그 나라가 이웃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을 것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평화 애호가들은 개인 권리를 인정하며 사회 관계에서 폭력을 추방하는 유일한 체제인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오히려 국가통제주의를 지지한다.

19세기와 20세기 지식인들은 국가통제주의와 군국주의를 연계시켰는데 미국에 있어서도 집단주의 개혁가들의 영향으로 국가 제국주의 정신이 부활하였고 이로 인해 "자유주의" 개혁가인 윌슨은 미국을 제1차 세계대전으로 끌고 들어갔고 역시 "자유주의" 개혁가인 루즈벨트는 미국을 제2차 세계대전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은 "민주주의"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소련, 파시스트 이태리, 나치 독일 등 세 독재정권을 창출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은 전 세계 인구의 1/3을 공산주의의 노예상태에 넘겨주었다.

진정으로 평화가 오늘날 지식인들의 목표라면 국가통제주의 전제를 포기해야 한다. 가난 때문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전쟁을 예방하는 길은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통제주의를 버리는 것인데 그 이유는 자유가 많은 나라일수록 더욱 번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통제주의를 포기하는 않는 한 한 국가 내에서와 국가간에 평화가 있을 수 없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제3장 미국의 박해받는 소수: 대기업

소수 권리의 보호는 고도의 도덕 원리인데 오늘날 이 원리는 인종적 또는 종교적 소수에게만 적용되고 소수 사업가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은 이중잣대로 사업가들을 비난하고 있다. 모든 독재정권은 독재 권력을 요구하는 정당성으로 사용할 희생양으로 몇몇 소수 그룹을 필요로 하는데 소련에서 희생양은 부르주아 유산계급이었고 나치 독일에서는 유대인이었으며 미국에서 그 희생양은 사업가들 특히 대기업가들이었다.

미국의 사업가들은 인류의 경제사에 길이 기록될 만한 가장 위대한 천재성과 가장 화려한 업적을 과시하여 왔지만 그들은 우리의 지식인들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받았고 관료들이 저지른 죄와 악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890년 제정된 독점금지법인 셔먼 법Sherman Act이었는데 이 법은 자유 기업의 옹호자라고 주장하는 소위 "보수주의자"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이 법 하에서는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사업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범죄자가 된다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자유 경쟁이 존재하는데 필요한 유일하고도 실질적인 요인은 방해받지 않는 자유 시장 기구의 운영이기 때문에 자유 경쟁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자유 방임Laissez-faire인데 독점금지법으로 인해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를 달성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저자는 미국에서 발생하였던 몇몇 독점금지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진정으로 소수 그룹의 정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소수인 개인의 권리를 인정해야 하고 우리가 많은 은혜를 입고 있는 작은 소수인 사업가들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저자는 독점금지법의 폐지가 우리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하고 그 과정으로써 독점금지에 관한 문제 전체의 재검토와 개정을 요구해야 하며 자유 사회의 상징이고 미국의 상징인 사업가들을 위하여 싸워야 한다고 저자는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제4장 반트러스트

이 장의 저자인 앨런 그린스펀은 미국에서 독점금지법의 전반적인 구조는 경제적 비합리성과 무지의 뒤범벅이며 역사에 대한 총체적인 오해의 소산과 비현실적인 이론들의 소산이라고 본다. 따라서 반트러스트 체제의 전체가 재검토를 위해서 공개되어야 하며 독점금지법의 역사적 근원과 이러한 법들이 근거하고 있는 경제이론들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러스트에 반대하는 대중들의 반발은 남북전쟁 직후 철도의 등장으로 시작되었고 1890년 셔먼 법Sherman Act으로 그 절정에 이르렀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1960년대 미국의 철도회사들은 독단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대중들은 그것을 자유 시장 실패의 증거로 보았으나 철도 회사들의 권력이 자유 시장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고 정부의 제약으로부터 유래가 되었으므로 그러한 견해는 오류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산업의 일반적인 발전은 소수의 작은 회사에서 시작하고 곧이어 많은 회사들이 합병을 통하여 효율성과 이윤을 증대시킨다.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새로운 회사들이 진입하므로 기존의 주도 회사는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오랫동안 시장점유를 유지할 수 있는 회사는 생산 효율성의 수단으로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므로 비난이 아니라 칭찬을 받아야 한다.

19세기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고전학파 경제학은 경쟁을 시장 가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시장 상태에 영향을 주려고 결코 시도하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최대량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수동적인 경쟁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경쟁을 생산자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시장 상태에 영향을 주는 능동적인 경쟁으로 이해하면서 자유 시장 경제에서 이러한 경쟁의 궁극적인 조정자는 자본시장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자본의 비효율적인 사용을 야기시켜 생활 수준을 계속 낮추어 온 독점금지법인 셔먼 법의 엄청난 비용을 비판하고 아울러 사회의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구성원들이 비난을 받는데 대해 비참함을 토로하고 있다.

제5장 자본주의에 대한 공통적인 오류들

이 장은 나다니엘 브랜던이 자본주의에 대한 오해들 중 독점, 불황, 노동조합, 공교육, 상속재산, 자본주의의 실용성 등의 문제에 관한 자기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독점의 종류에는 강제적 독점과 비강제적 독점 등 두 종류가 있는데 강제적 독점은 정부통제, 입법 행동, 정부 행동 등 국가통제주의 요소에 의해 생길 수 있다. 비강제적 독점은 그 가격 및 생산 정책이 시장에 의존하고 있고 수요-공급 법칙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비강제적 독점은 자유 시장 체제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므로 비난받을 이유가 전혀 없고 강제적 독점은 정부간섭에 의해 발생한 것이므로 비난을 받아야 하며 이러한 독점을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와 경제의 분리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국가통제주의자들은 불황은 자유방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며 1929년의 대공황을 그 증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자유방임 하에서 일시적인 침체는 경제 체제가 오류를 수정해 가는 바람직한 과정으로 본다. 그리고는 1929년의 대공황을 포함하여 미국의 불황을 살펴 본 후 불황의 원인은 연방 준비 제도와 정부간섭에 의한 통화조절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노동 조합은 일반적인 생활 수준을 높이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한 후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단정적으로 말하면서 자본주의로 인한 자본 축적, 기술 진보, 산업 확장 등으로 인해 임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노동 운동이 아니라 경제적 자유가 노동자의 생활 수준을 높였다고 주장하면서 1920년대 미국보다 노동 운동에 있어서 우세를 보인 프랑스와 독일의 노동자 생활 수준이 미국 노동자의 생활 수준보다 훨씬 낮았다는 것을 그 근거로써 제시하고 있다.

교육이 국가의 특권이므로 국가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며 공교육을 위해서 사람들의 재산을 징수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국가통제주의자들의 주장은 그 어떠한 도덕적 근거도 없으며 오히려 정부가 교육과 같은 사상의 영역에 개입하고 그 내용들을 규정할 때는 자유 사회는 끝장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치욕적으로 낮은 미국의 교육수준은 국가통제 교육제도의 결과로 보면서 교육 분야에 시장 체제를 도입해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아이디어를 저자는 제시하고 있다.

상속재산의 문제를 논할 때는 기본적인 권리인 재산 형성자의 권리와 파생된 권리인 상속인의 권리로 나누어야 한다. 재산권이란 사용권과 처분권이므로 재산을 형성한 사람이 재산을 사용하고 그의 생애에 걸쳐 처분할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상속인을 선택할 권리도 있으므로 상속인의 인물됨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로써 상속재산을 받기에 적합한 상속인이 그것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면 일반적인 생활 수준을 높여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만약 상속인이 상속재산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다면 그것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은 상속인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사회가 더욱 복잡해짐에 따라 자유방임 자본주의는 덜 실용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저자는 오히려 경제가 더 복잡해짐에 따라 더 많은 선택과 결정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 더욱더 눈에 띄게 비실용적이 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제6장 금과 경제적 자유

이 장은 앨런 그린스펀이 자유방임 자본주의에서 금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금과 경제적 자유는 분리할 수 없으며 금본위제는 자유방임의 수단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국가통제주의자들은 금본위제를 거의 병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그들의 반대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유 사회에서 금의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서 이해해야 하는데 금은 교환 경제에서 화폐의 기본적인 기능들을 충족시켜 주며 다른 교환의 매개 수단들보다 우위에 있어서 세계 제1차대전 이후 금은 사실상 유일한 국제적 교환의 매개 수단이 되어 왔다. 그러나 양이 한정되어 있는 금으로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 지불할 수 없고 이로 인해 사회의 노동 분할과 전문화는 제한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은행 제도와 은행권 및 예금 등 새로운 신용 수단이 개발되었다.

국가통제주의자들은 은행의 지불 준비 부족이 경기후퇴를 가져 왔기 때문에 만약 은행들이 무제한적으로 대출할 수 있다면 결코 경기침체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하면서 1923년 미국에서는 연방 준비 제도가 창설되었다. 그러나 연방 준비 은행이 경제에 퍼부었던 과도한 신용은 주식시장으로 넘쳐 들어가 엄청난 투기 붐을 유발시켰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기업에 대한 신뢰감이 추락하여 미국 경제가 붕괴되었다고 저자는 보면서 완전히 자유로운 금본위제와 완전히 일관성 있는 금본위제는 경제 안정과 균형 성장의 수호자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복지 국가통제주의자들이 금본위제를 반대하는 숨은 이유는 개인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금본위제가 없을 경우 인플레이션을 통한 몰수로부터 저축을 보호할 방법이 없으므로 금이 재산권의 보호자로서 역할을 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제7장 미국의 자유 기업사에 대한 주해

흔히들 대기업가의 잘못으로 돌려졌던 해악들은 규제가 없는 산업의 결과가 아니고 산업에 대한 정부 권력의 결과이므로 사업가와 자유 기업가가 나쁜 사람들이 아니고 입법가와 정부 통제가 나쁘다고 저자는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예시로 미국의 철도 산업의 역사를 들고 있다.

어느 한 철도회사가 받은 정부 지원의 정도는 그 회사의 어려움과 실패에 직접적으로 비례한다. 다시 말해서, 캘리포니아의 4인방Big Four이 설립한 써던 퍼시픽Southern Pacific과 같이 최악의 역사를 가진 철도회사는 정부로부터 가장 많은 지원을 받았던 회사이고 제임스 제롬 힐James Jerome Hill이 설립한 그레이트 노던Great Northern과 같이 가장 성과가 좋은 철도회사는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전혀 받지 않았던 회사이다.

이를 통해 볼 때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자기보다 나은 경쟁자들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은 정부 규제의 지원 하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은 경제적 지원을 위해 정부에게 의존하며 능력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재산을 모으기 때문에 정부가 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한 정부는 부패한 정치인과 부정직한 사업가를 계속적으로 만들어 낸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지금은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만들어 진 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솔하게 받아들여 온 개념 즉, 경제에 대한 통제는 정부의 적합한 기능이라는 개념은 잘못된 것이며 기업을 위하든 노동자를 위하든 경제에 대한 정부 통제는 산업사에서 모든 악의 근원이 되어 왔다는 것을 직시하고 국가와 경제를 분리하여 생산과 거래에 있어서 모든 형태의 국가 간섭을 철폐하는 자유 방임 자본주의가 유일한 해결책임을 인식할 시점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제8장 산업 혁명이 여성과 아동에게 미친 영향

이 장은 산업 혁명으로 인한 산업 자본주의가 아동들을 노동의 현장으로 끌어내어 어린이들의 조건이 나빠졌으며 여성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자본주의 적들의 비평에 대한 로버트 헤센Robert Hessen의 반론이다.

먼저 아동 노동에 대해서 저자는 영국의 인구 통계를 근거로 산업 혁명으로 인한 공장 체제의 발전은 생활 수준을 향상시켜 영아 사망률을 떨어뜨리고 수만의 어린이들에게 생계와 생존수단을 제공하여 오히려 공장이 그들을 아사餓死로부터 구했다고 주장하면서 산업 혁명으로 어린이들의 조건이 나빠졌다는 사회주의자와 파시스트의 비난은 거짓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어린이들의 근로 조건을 개선시킬 목적으로 제정된 영국의 아동 보호법과 공장법은 오히려 어린이들을 노예상태로 만들거나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어린이들의 신분을 비참한 상태로 격하시켰다. 산업혁명과 그 결과로 나타난 번영이 어린이들을 해방시켜주었으며 이것은 자본주의만이 달성할 수 있는 과업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다음으로 산업 자본주의가 여성의 격하와 비참함만 가져 왔다는 것은 거짓이며 자본주의가 여성들에게 가져다 준 혜택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하에서 여성의 신분과 자본주의 이전 여성이 처한 조건을 비교해 보아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본주의 이전에는 여성은 가정에 예속되었으며 여성에게 적합한 역할은 남편을 위해서 요리하고 자녀들을 양육하는 개념이었다. 자본주의하에서 공장 체제는 여성들에게 생존 수단, 경제적 독립, 최저 생계에서 벗어나는 수단 등을 제공하여 여성들의 신분을 높였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제9장 정직에 대한 공격

이 장은 자본주의에서 사업가들이 부정직하지 못하고 악랄하기 때문에 그들의 탐욕으로부터 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감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집단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한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의 반박이다.

그는 오히려 사업가의 탐욕과 이윤 추구가 소비자들을 보호해 준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업가들의 사리사욕 속에는 정직한 거래와 질 좋은 상품에 대한 명성을 얻고 싶은 것이 있다. 자유 경제에서 이러한 명성이나 평판은 무형의 자산이기 때문에 사업가가 모든 생산 분야에서 신중하게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 유인이 된다. 이 유인이 자유 기업 체제에 내장된 안전 장치이며 기업의 부정직으로부터 소비자들을 보호하는 유일한 보호 수단이 된다.

정부규제로 소비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시도는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지 못한다. 먼저 소비자들을 부정직한 사업가로부터 격리시키기보다는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하고도 믿을 만한 보호인 경쟁과 명성을 점차적으로 파괴해 소비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한 그러한 정부규제는 사업가들이 수년에 걸쳐 이룩해 놓은 영업권의 시장 가치를 잠식해 사업가들이 정직으로 창출한 재산에 대한 몰수 행위이다.

자본주의는 정직과 신의를 중요한 미덕으로 간직하고 있으며 시장에서 이를 보상하고 사람들이 악덕이 아니고 미덕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하는 최고의 도덕적 체제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제10장 방송 전파의 재산 상태

인간의 지식과 노력에 의해 창출된 자원들은 그러한 지식과 노력을 투입한 사람의 권리에 의해 사적 재산private property이 되어야만 하는데 방송 주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집단주의자들은 과학 천재들이 만들어 낸 방송 전파를 주파수가 제한되어 있다는 이유를 들어 공공 재산public property으로 간주하는데 이것은 아주 불합리하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나 발명이 있었을 경우 미국 정부는 관련된 모든 개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취해 왔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미국 서부의 공유지를 개인에게 불하하여 개인 소유권의 확립한 1862년의 홈스테드 법Homestead Act이다. 이 경우 정부는 소유주처럼 행동한 것이 아니라 잠재적인 소유주가 그것을 획득할 수 있도록 객관적으로 편견 없는 규칙을 정의하는 임자 없는 자원의 관리인처럼 행동하였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공영화의 역사는 자본주의 파괴의 과정과 원인을 소규모로 축약해서 나타내고 있으며 그것은 자본주의 옹호자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철학 부재로 자본주의가 멸망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초기 라디오 공중파의 무질서는 무정부 상태에서 사적 재산권이 없어서 발생하였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하나 밖에 없다. 홈스테드 법의 원리에 따라 방송 채널을 개인 소유권으로 이양하는데 객관적이고, 공개적이고, 공정한 과정을 거쳐 라디오와 텔레비전 주파수를 경매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근본적인 개혁이지만 과학 진보에 이념이 따라서 발전해 주지 못하면 더 이상 과학 진보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제11장 특허권과 저작권

특허권과 저작권은 모든 재산권의 기초를 법으로 완성한 것들로 인간의 정신이 만들어 낸 생산물에 대한 인간의 권리이며 지적 재산이다. 정부는 특허권이나 저작권을 발명자에게 특혜로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창시를 증명해 주며 이용과 처분에 대한 소유주의 독점권을 보호한다.

지적 재산에 대한 권리는 영원히 행사될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의 시간 제한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관련된 모든 개인들의 권리를 정의하고 보호하는 원칙 하에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오늘날 집단주의자들은 상표나 상표명 등의 폐지를 제안하고 있는데 이러한 제안의 궁극적인 목표는 특허권의 폐지이다. 특허권이 재산권의 심장이기 때문에 일단 특허권이 붕괴되면 다른 모든 권리들은 자동적으로 붕괴될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특허 체계의 현 상태는 아주 나빠서 발명가들이 특허 받기를 두려워하여 가치 있는 발명품들을 비밀리에 보호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제12장 이론과 실제

이 장에서는 LA 타임즈에 실린 아인 랜드의 사설 두 개를 모아 놓았는데 하나는 인간증오자이고 다른 하나는 맹목적인 혼돈이다.

먼저 이타주의자-집단주의자는 다른 사람들에 희생을 요구하며 사람을 희생동물로 간주하는 인간증오자이다. 그들은 인류 복지가 최고의 목표라고 말하지만 이타주의는 사랑이 아니고 인간증오가 그 신조이며 집단주의자는 인간의 독립성, 성공, 번영, 행복을 파괴하고자 한다고 저자는 단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증거로써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의 대조에서 보여주듯이 지구상에서 유례없는 최고의 생활 수준을 만들어 온 자본주의를 가장 큰 목소리로 그들이 비난하는 것을 들고 있다.

다음으로 미국에서 정치 철학의 부재가 혼돈을 가져온다고 저자는 주장하면서 정치적 자유를 획득하는데는 정치 원리가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 정치 원리란 개인 권리를 이웃과 지도자로부터 보호하는 것인데 미국의 경우 미국 헌법에 있는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이 그 좋은 예이다. 미국은 이러한 정치 철학에 의해 인간의 권리를 획득한 국가였으나 자유주의자들이 이러한 정치 철학을 포기함으로써 나라가 붕괴되어 가고 있다고 저자는 안타까워하면서 정치 원리를 회복하자고 역설하고 있다.

제13장 자유방임

경제성장이 오늘날 큰 문제여서 미국의 존슨 행정부가 경제성장을 활성화시키겠다고 약속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유방임laissez-faire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자문관이었던 콜베르Colbert는 산업 장려를 통한 정부 규제가 국가의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지만 오히려 실패하였다. 17세기 프랑스 기업인들은 기업에 대한 정부의 도움은 정부 박해만큼이나 비참하며 국가 번영에 정부가 서비스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손을 떼는 것 즉 자유방임이라는 것을 알았다.

산업 이전 시대에서조차 실패했던 정부통제가 근대 고도 산업 사회에서 성공할 희망은 없다. 더구나 지성은 강압 하에서는 작동하지 않으며 인간의 마음은 무력에 의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인류 번영, 업적, 진보의 정도는 정치 자유의 정도에 직접적으로 비례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서 비교적 자유로운 경제체제를 가진 서독이 통제된 경제체제를 가진 동독보다 높은 경제의 효율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들고 있다. 또한 자유를 잃어가고 있는 영국에서 두뇌 유출이 발생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국가의 번영을 위한 최고의 필요조건은 자유라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제2부 현재 상태

제14장 타협의 해부

사람들로 하여금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할 수 있게 하고, 어느 특정한 순간에 구체적인 대안을 평가할 수 있게 해 주며, 미래를 계획하고 그것을 달성하도록 해 주는 것은 원리밖에 없다. 따라서 원리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식이 분해되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원리가 실제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3가지 준칙을 우리들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첫 번째 준칙은 동일한 기본 원리를 견지하고 있는 두 사람 또는 두 그룹 사이의 갈등에서는 승리하는 쪽이 더 일관성이 있다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로써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을 들고 있다. 두 당 모두 이타주의를 도덕 원리로 삼으면서 복지 국가와 혼합 경제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지만 정부 권력의 증대에 일관성 있는 자세를 취해 온 민주당이 승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과정을 계속할 경우 궁극적으로 공산주의자가 승리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타주의 원리를 바꾸어야만 이러한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두 번째 준칙은 상이한 기본 원리를 견지하고 있는 두 사람 또는 두 그룹 사이의 협력에서는 승리하는 쪽이 더 나쁘거나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로써 국제연합을 들고 있다. 공산주의 독재정권과 반半자유 국가의 협력에서 공산주의 국가는 자유주의 국가로부터 물적, 재정적, 과학적, 지적 자원을 얻지만 자유주의 국가는 공산주의 국가로부터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국제연합은 소련이 무력으로 정복하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넓은 지구의 땅과 인구를 소련의 권력에게 양도해 왔다. 따라서 이타주의 원리를 무시해야만 이러한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세 번째 준칙은 상반된 기본 원리들이 명확하고 공개적으로 정의될 때는 합리적인 쪽에 이익이 되지만 그것들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고 숨겨지거나 회피될 때는 비합리적인 쪽에 이익이 된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성과 논리를 가지고 기본 원리를 타협하지 않으면 악이 결코 승리할 수 없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제15장 지성인들의 파업

이 장의 목적은 아인 랜드의 소설 {지성인들의 파업Atlas Shrugged}에 나타나 있는 사건들과 오늘날 세계의 실제 사건들과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다.

{지성인들의 파업}이라는 소설의 주제는 인간 존재에 있어서 지성인의 역할인데 이 소설에서 모든 합리적 노력의 창시자이고 혁신가인 지성인들이 이타주의자-집단주의자 사회에 대항하여 파업하고 자취를 감추어 버릴 때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지를 보여준다. 또한 이 소설에서는 근본적인 두 적대자 즉 이성-개인주의-자본주의 대 신비주의-이타주의-집단주의의 갈등을 나타내고 있는데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철학은 신비주의-이타주의-집단주의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신비주의-이타주의-집단주의로 인해 국가가 많은 우수한 인재들을 잃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면서 그 증거로 영국 과학 인재들의 국외 유출과 최고로 우수한 인재들의 의과대학 지원율이 떨어지고 의사들이 파업하는 것 등을 들고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의 업적이 커서 그에 대한 사회의 필요가 크면 클수록 그가 받는 대우는 더 나빠지고 그는 희생 동물의 상태에 더 가까워지는데 우리들에게 계속적으로 높은 생활 수준을 제공해 준 사업가가 신비주의-이타주의-집단주의로부터 착취당한 최초의 희생자였고 이제는 의사가 그 공격 목표가 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역사의 진로를 결정하는 힘은 단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인간의 합리적 재능의 힘 즉 사상의 힘이다. 따라서 우리를 현재 상태로 만들어 온 신비주의-이타주의-집단주의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성-개인주의-자본주의 철학밖에 없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제16장 연줄을 파는 사람들:로비스트

미국의 대외 원조 정책은 미국 경제를 파멸로 이끌고 있으며 타협, 퇴각, 패배 및 배신의 기록만을 가진 무능한 낙오자의 위치로 끌어내려 국제적으로 위축시키고 있다. 또한 당초 기대하였던 세계발전을 가져오는 대신에 종족 전쟁의 피나는 무질서를 가져오고 약소국가들을 하나 둘씩 공산주의 권력에게 양도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미국이 이러한 대외 정책을 채택하게 된 배경에는 외국의 정부나 이해관계자들을 위해 일하는 로비스트들이 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입법가들에게 영향을 주어 법률제정에 영향을 끼치려고 시도한다. 특히 러시아는 이러한 로비스트들을 조정하여 음모를 꾸미고 또한 실제로 미국을 자기파멸로 몰고 감으로써 성공한 대표적인 국가이다.

미국에서 이러한 로비스트들이 활개를 치는 이유는 미국이 입법과정에서 이타주의-집단주의에 근거한 대중의 이익 또는 국제적 이익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권리보다 대중의 이익이 우선시 되는 한 로비스트와 압력 단체들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들은 입법가나 행정 관료들과의 연줄을 파는 행위인 로비를 지속적으로 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제17장 극단주의 또는 중상모략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합리적인 개념을 말살하고 대체할 의도를 가진 인공적이고, 정의되지 않고,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용어가 반개념이다. 반개념의 목적은 공론을 거치지 않고 어떤 개념들을 없애는 것이다. 이러한 반개념들의 예로써 1930년 고립주의, 1940년대 맥카시주의 그리고 최근의 극단주의를 들 수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점진적인 과정으로 이 나라에 국가통제주의를 들여오기 위해 이러한 반개념을 만들어 퍼뜨리고 있는데 그들이 말살하고자 하는 주요 목표는 자본주의 개념이다. 우리의 문화적 정서를 오염시키는 이러한 반개념들 중 극단주의가 규모면에서나 시사하는 점에서 가장 야심적이다.

우리 시대의 기본적이고 중요한 정치적 이슈는 자본주의 (자유) 대 사회주의 (국가통제) 이다. 그러나 이 이슈는 수십년 동안 보수주의 대 자유주의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로 취급되어 왔다. 그것이 오늘날에는 국가통제주의자들에 의해 극단주의자와 온건주의자라는 반개념으로 발전되었다. 온건주의자라고 자칭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지지자를 극단주의자라고 비난하고 부유한 자들을 위한 독재라고 중상모략을 하면서 자본주의를 제거하기를 바란다.

지난 수십년 동안 자유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완전한 말살을 시도하면서 미국에 국가통제주의를 몰래 들여 왔다. 그들은 중도를 내세워 자본주의와 국가통제주의를 혼합한 혼합경제를 지지하였다. 그러나 개인 권리에 기초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이타주의 도덕에 근거하고 있는 국가통제주의와 결코 혼합될 수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 지지자는 기본 원칙과 도덕적 문제에서 결코 타협을 하지 않았다. 국가통제주의자는 이러한 자본주의 지지자들의 비타협적인 자세를 극단주의라고 중상모략을 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개념이 말살되면 자유 사회가 존재할 수 없으므로 그들과 대항하는데는 오히려 더욱더 이러한 비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제18장 자본주의의 말살

국가통제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개념을 말살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반개념을 만들어 내었는데 이제는 자본주의 옹호자들이 반개념을 만들어 내어 자본주의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희생 제물로 보는 이타주의적 견해가 아니고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일하는 인간의 권리인 개인 권리의 인식에 근거한 체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이타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미덕을 선전하고 사회주의를 공격하면 할수록 자본주의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자본주의 지지자들이 이타주의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과 타협하는 정책을 취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의 갈등에서 보수주의자들이 패하는 이유는 보수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본질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공산주의자와 대항하여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타주의를 철저하게 거부하고 자본주의를 확실하게 옹호해야 한다.

오늘날 미국이 하고 있는 것처럼 타협, 화해, 애매함, 완곡함으로 자본주의 적들과 대항해서는 자본주의가 진정으로 승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비심, 선의, 인간 불행에 대한 관심 등은 이타주의의 본질이 아니며 이타주의의 본질은 사람에 대한 증오이고, 성공적인 삶에 대한 증오이며 선한 사람들에 대한 증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과 거래에 의해 부를 창출하는 유일한 체제는 자본주의이며 인간의 권리를 지지하는 유일한 체제는 자본주의라는 확신을 가지고 적들과 싸울 태세를 가져야만 자본주의를 지킬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제19장 보수주의:사망광고

오늘날 자유주의자는 국가통제주의를 몰래 시도하고 있고 보수주의자는 자본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의 도덕적 기초의 부재와 완전한 철학적 방어의 부재로 자본주의는 사라져가고 있다.

오늘날의 보수주의자가 자본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주장은 신앙에서 나온 주장, 전통에서 나온 주장, 부패에서 나온 주장 등 세 가지가 있다. 신앙에서 나온 주장은 미국과 자본주의는 하느님을 믿는 신앙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통에서 나온 주장은 미국의 선조들이 정치 체제로 자본주의를 선택하였으므로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패에서 나온 주장은 사회주의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본성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주장들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본질을 왜곡하여 자본주의 적들의 승리를 도와주고 재촉한다.

개인 권리에 근거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집단의 이익에 대한 개인의 희생에 근거하고 있는 이타주의 도덕으로 파괴되었다. 자본주의는 이타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이타주의의 도덕적 근본을 거부하지 않고는 자본주의, 자유 및 문명을 구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자본주의는 과거의 체제가 아니고 인류의 미래를 위한 미래의 체제이다. 자본주의를 위해 싸우고자 하는 자들은 보수주의자라는 타이틀을 벗어버리고 새 급진주의자, 새 지식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롭고 헌신적인 도덕가가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하면서 그의 저서인 {새 지식인을 위하여For the New Intellectual}에서 이를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 위기는 도덕적 위기이다. 그리고 도덕적 혁명만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도덕적 혁명은 미국 혁명의 업적을 인정하고 완성시키는 것이다. (중략) 새 지식인은 "실질적" 문제와 경제적 문제가 아니고 최고의 정의감을 가진 도덕적 문제로서 자본주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 자본주의는 그만한 가치가 있고 다른 어떤 것도 자본주의를 구할 수 없다.

제20장 새 파시즘:여론정치

오늘날의 문화를 지배하는 이념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오늘날 이념적 추세가 없다고 답변한다. 오히려 국가통제주의자는 여론 정치라고 하는 반이념을 만들어 가지고는 그것이 이성과 도덕을 대신하는 최고의 덕이라고 주장한다.

국가통제주의는 사회주의와 파시즘을 국가통제주의의 특정한 변형으로 하는 광의의 포괄적인 용어인데 오늘날 우리는 사회주의와 파시즘 중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오늘날 우리는 새 파시즘을 향한 길을 포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재산의 사유화는 인정하지만 개인 재산의 사용과 처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통제를 하는 체제는 파시즘의 근본적인 특징이므로 사유 재산을 유지하면서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증대시키고 있는 국가통제주의는 사유 재산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사회주의보다는 파시즘에 가깝다는 것이다.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사업계와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면서 '연고에 의한 귀족'이라는 사업가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것은 파시스트 국가에서 기업과 정부 관계의 경제적 본질과 동일하며 동반자 관계는 정부 통제와 내용면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미국의 파시즘 형태와 유럽의 파시즘 형태는 차이가 있는데 유럽은 호전적인 파시즘이며 미국은 내부 부패에 의해 자멸하는 냉소적 파시즘이라고 저자는 주장하면서 이를 길드 사회주의라고 불렀다. 길드 사회주의는 사람들을 엄격한 규칙 하에서 직업적인 특권계급으로 묶어둠으로써 재능 있는 젊은이들의 미래를 약탈하며 보통사람들을 보호하고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속박하는 새 파시즘인데 그 대표적인 예로써 이탈리아의 파시스트와 미국의 뉴딜 정책을 저자는 들고 있다.

미국이 새 파시즘으로 향하고 있는 이유는 자유주의자들이 실용주의와 여론정치를 가지고 혼합 경제를 계속적으로 시도하고 있고 보수주의자들은 철학의 부재로 인하여 자본주의를 제대로 전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 권리의 보호라는 자본주의의 철학적 기초로 확실히 이해하면 자본주의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제21장 여론의 파멸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국제적인 규모로 이타주의를 실천하기 위하여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였으나 지금은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미국을 그러한 책임 없는 무모함에 빠져들게 한 것은 징병제도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혼합 경제에서 개인 권리에 대한 국가통제주의자의 침해들 중 징병제도가 최악의 것인데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모두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논리로 이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 논리는 이념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잘못된 논리이다. 또한 징집제도는 국가 방위가 그 목적이 아니고 국가통제주의자들이 징집제도를 통하여 권력과 인간의 삶이 국가에 속한다는 그들의 원칙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따라서 현재의 징집제도는 지원군 제도로 대체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지원군은 정부 일각에 있는 호전적인 이념을 견제해 주는 평화의 보호자 역할을 하며 현대전은 기술 전쟁이어서 고도로 훈련된 과학적인 요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한 국가통제주의자들은 사회봉사제도의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 제도는 미국의 젊은이들을 무지, 가난, 인종 차별 및 전쟁과 같은 사회악을 제거하는데 봉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제도 역시 자유와 개인 권리에 대한 침해임에도 불구하고 그 제도의 대상자들이 대부분이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여론주의는 원래 목표하던 통일과 합의를 가져오는 대신에 미국을 와해시키고 분해시키고 있다. 국민들은 국가통제주의의 진부한 선전문구에 환멸을 느끼고 다른 대안을 갈망하고 있다. 지금은 지식인들이 기본 원칙에 의해서 도덕적-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응집할 때라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제22장 이용당하는 학생 폭동

1964년 캘리포니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언론 자유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학생 폭동이 발생하였는데 언론을 통해서 그 폭동의 본질이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 폭동의 배후에는 공산주의자가 있었고 그 운동의 실질적인 목표는 권력 쟁탈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여론의 반응을 보기 위한 예비적 타진trial balloon으로 학생 폭동을 이용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버클리 폭도들은 국가통제주의자-집단주의의 이념인 개인 권리의 폐지와 폭력의 지지를 확고히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특공대원이었으나 대학 당국, 사회 평론가, 언론, 주지사 등 기성 세대의 권위자들이 철학적 무력함으로 인해 이들에 대해서 확고한 입장을 취할 수 없었고, 합리적인 해답을 줄 수 없었으며, 그들을 인정하거나 그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타협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하였고 오히려 모든 사람이 불만을 느끼게 하였다.

한 나라의 추세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지식인들인데 역사적으로 우리는 지금 일종의 지식인이 없는 땅에 살고 있다. 집단주의자들은 그 동안 성공하는 듯 하였으나 이성과 도덕에 대한 그들의 주장이 사기로 드러남에 따라 인간의 지성을 위한 전투에서 패배하여 이제 그 최후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과의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더 좋은 이념을 가지고 그들의 의미를 폭로하고, 그들의 주장에 반박하고, 완전하고 일관성 있는 대안을 지식인들이 제시해야 한다. 확고한 도덕적-지적 토대 위에서 이념으로 무장할 때 쇄도하는 집단주의의 공격을 퇴치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역사도 결정할 수 있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제23장 소외

이 장에서는 나다니엘 브랜던이 인간 소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간 소외alienation의 문제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인류가 형성된 이후 이 문제는 인간과 항상 함께 해 왔다. 성서적으로 볼 때, 인간소외 문제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한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면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으며, 이것은 바로 인간을 소외의 문제로 고통받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은 자본주의의 발달이 인간 소외의 문제를 심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한 인간소외의 문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해와 입장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간은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물질만능주의와 상업주의, 산업주의와 기술만능주의, 합리주의, 사유재산제도를 확대시켰다. 또한 인간 개성의 상실, 공동체의 파괴로 인한 소속감의 상실을 초래했고, 그 결과 인간은 정체성identity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현실로부터 소외되었다.

한편, 에릭 프롬은 인간소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공동체의 회복과 인간에게 무조건의 사랑을 주는 사회 체제의 확립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소외 문제에 대한 자본주의의 책임론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 즉 인식하는 존재이므로, 인간은 스스로의 사고와 선택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소외를 극복해야 하며 "인간은 스스로 만든 영혼의 존재"라고 주장한다.

제24장 인간을 위한 애가

저자는 로마 교황이 전세계의 모든 성직자에게 보내는 회칙encyclical에 나타난 자본주의에 대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그 회칙에 나타난 자본주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회칙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 즉 빈곤, 부익부 빈익빈, 동족간의 대립, 물질 만능주의 등이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인 이윤추구와 경쟁 그리고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제에 그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로 인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회칙은 이타주의에 기초한 국가중심의 분배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회칙은 분배의 기준은 필요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저자는 회칙이 주장하는 이타주의 하에서의 국가중심의 분배는 군국주의 또는 독재를 정당화시킬 위험 뿐만 아니라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어 인간의 창의력이나 일을 하고자하는 동기를 제거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개인주의와 이타주의는 양립할 수 없고 개인주의에 근거하고 있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풍부한 생산을 가능하게 해 준 유일한 체제이므로 자본주의의 실천과 확대를 통해서 오늘날 인류가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부록1 인간의 권리

역사적으로 볼 때 이집트, 아테네, 로마 제국, 불란서, 프로이센, 나치 독일, 소련 등 이타주의자-집단주의자 윤리를 신봉하는 체제들은 개인을 다른 사람들의 목적을 위해 희생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간주하고 사회를 기본적으로 목적으로 간주한다. 또한 개인의 삶이 사회에 속하고 사회는 마음대로 개인을 다룰 수 있으며 개인이 누리는 자유는 특별히 자신에게만 사회가 허락한 것이므로 언제든지 취소될 수 있다는 것을 지지한다. 그러나 미국과 같은 자유 사회는 개인을 기본적으로 목적으로 간주하고 사회를 개인들의 평화롭고 질서정연하며 자발적인 공존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또한 개인의 삶은 권리 즉, 도덕적 원리와 본성에 의해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고, 권리는 개인의 재산이며 사회는 그러한 권리가 없고, 정부의 유일한 도덕적 목적은 개인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것을 지지한다.

자유 사회를 태동시킨 것은 개인 권리의 개념이었고 자유의 파괴는 개인 권리의 파괴와 함께 시작된다. 개인 권리에는 모든 권리의 근원이 되는 생존권, 모든 권리의 유일한 실현인 재산권, 그리고 언론 자유권 등이 있다. 생존권은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유지할 권리를 의미하며 재산권은 재산을 얻고 이용하고 처분하는데 필요한 경제적 행동을 취할 권리를 의미한다. 언론 자유권은 정부에 의한 억압, 방해 및 징계 행위의 위험 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자는 이러한 개인 권리의 유일한 옹호자들이다.

부록2 정부의 본질

정부는 일정한 지리적 영역 안에서 사회 행위에 관한 어떤 규칙들을 집행하는 독점력을 가지고 있는 기관인데 왜 그러한 기관이 필요한가?

사람들이 평화롭고,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사회에서 상부상조하면서 공존하기를 원한다면 인간 생존을 위해 인간 본성이 요구하는 개인 권리라는 기본적인 사회 원리를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 권리는 폭력에 의해서 침해당할 수 있다. 사회 관계에서 폭력을 금지시키는 것이 문명 사회의 전제조건이므로 폭력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보복용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절대 필요하다. 그러나 보복용이라 하더라도 폭력의 사용을 시민 각자에게 맡겨 두면 객관성을 상실하여 사회 관계에서 평화적인 공존을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객관적인 규칙 하에서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할 임무가 주어진 기관을 필요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정부이다. 즉, 정부는 객관적으로 정의된 법률 하에서 보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수단이며 개인 권리의 보호가 정부의 유일하고도 적합한 목적이다. 정부의 올바른 기능은 세 개의 광범위한 범주로 나눌 수 있는데 모두 폭력과 인간 권리의 보호 문제와 관계가 있다. 경찰police은 범죄자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며 군대armed force은 외국의 침입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며 법정law courts은 객관적 법에 따라 사람들 사이의 논쟁을 해결한다. 예를 들면, 계약의 일방적인 파기unilateral breach of contract, 사기행위fraud, 강탈extortion 등은 폭력의 간접적인 사용인데 정부는 객관적인 법에 따라 사람들 사이의 이러한 논쟁을 해결하는 중재자의 기능을 해야 한다.

한편, 정부는 폭력의 사용과 싸우고 제지하는 대리인이므로 정부는 폭력의 법적 사용에 대한 독점권을 가져야 하지만 정부 권력의 원천은 "국민들의 동의consent of the governed"이기 때문에 정부는 지배자가 아니라 시민의 봉사자가 되어야 하며 정부의 행동은 엄격히 정의되고 제한되고 한계가 정해져야 한다. 즉, 정부 관리는 법적으로 허용된 것 외에는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정부에 대한 주도적인 견해 속에는 도덕 및 정치 전도轉倒가 진행되고 있어 정부가 인간 권리의 보호자가 되는 대신에 인간 권리의 침해자가 되고 있고 자유를 수호하는 대신에 노예상태를 확립해 가고 있다. 사람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대신에 정부가 먼저 폭력을 사용하고 있다.